
얼마 전 첫째 아이가 조부모님과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열흘 정도 학교를 쉬었습니다. 오랜만에 등교하는 날, 학교 앞에서 아이를 내려주는데 운동장을 가로질러 친구들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친구들도 아이를 향해 뛰어오더군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부모로서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어 안도했습니다. 아이의 친구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자존감을 키우는 부모의 사랑표현
아이들은 놀랍게도 서로의 힘을 정확히 구별해냅니다. 여기서 '힘'이란 단순히 체격이나 성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핵심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낮은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 약한 존재로 분류되곤 합니다.
교육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이 높은 아이일수록 친구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저도 교실에서 이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내향적이지만 주관이 뚜렷한 아이는 결코 무시당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겉으로는 활발해 보여도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는 의외로 갈등 상황에서 쉽게 밀려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차이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의식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잠들기 전에 꾸준히 표현했습니다. 실수를 해도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실수 그 자체보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려 노력했습니다.
가끔 제가 너무 많이 혼내는 건 아닌가 걱정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밉보이는 것보다는 집에서 제대로 배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중요한 건 혼내더라도 그 바탕에 충분한 애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만 내 행동을 고쳐주려는 거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거절연습과 협상능력 키워주기
교실에서 관찰하다 보면 끝까지 자기 주장만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모둠활동이나 단체 놀이 때마다 문제가 생깁니다. 심지어 본인이 틀렸다는 걸 알게 돼도 친구들이 져줄 때까지 고집을 부립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아이들 대부분이 공부를 잘한다는 점입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 성향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완벽주의란 자신과 타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심리적 특성을 말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경우, 아이는 자신의 실수뿐만 아니라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럽지 못하게 됩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이런 성향은 친구관계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저는 첫째에게 의도적으로 선택의 기회를 많이 줬습니다. 옷을 고를 때, 주말 활동을 정할 때, 저녁 메뉴를 선택할 때 아이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처음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더니 점차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도록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세 살 때부터 또래 모임에 자주 참여시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협상하는 법을 배우게 했습니다. 거절하는 방법도 연습시켰습니다. "친구가 네 물건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네가 아직 쓰고 싶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상황극을 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과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보드게임을 할 때도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이 방법을 써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며 결과가 아닌 전략과 과정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교실에서 인기 있는 아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조건 자기 뜻대로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양보하지도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협상합니다. "내가 이렇게 할 테니까 너는 저렇게 해줘"라는 식의 딜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친구관계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충분한 사랑으로 자존감의 기반을 다져주기
-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환경 만들어주기
- 선택과 자율성을 존중하여 주관 키워주기
- 거절과 협상을 연습시켜 사회성 향상시키기
- 과정 중심 사고방식 심어주기
아이가 긍정적인 교우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저 역시 아이를 혼낸 뒤 밤에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병에 사랑이 넘칠 때, 아이는 밖에서 그 사랑을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SNS에 화려한 모습을 올리는 타인과 비교하며 초라함을 느끼기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더 가치 있게 여기게 됩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많은 사랑으로 자존감을 키워주고, 무엇이 중요한지 항상 마음에 새겨주며, 단단한 마음가짐을 길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 https://edu.chosun.com/m/edu_article.html?contid=2014122900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