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9시, 숙제 앞에서 피곤해하는 첫째에게 저도 모르게 화를 냈습니다. "아침에 다 끝냈어야지", "왜 이해를 못하니" 같은 말들을 쏟아냈죠. 아이가 다시 가르쳐달라고 물었지만 "지쳐서 못하겠다"며 끊어버렸습니다. 그날 밤, 제가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참을 후회했습니다. 부모인 저부터 감정 표현에 서툴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이의 정서 발달, 왜 부모가 먼저 배워야 할까요?
"우리 아이, 감정 표현을 잘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인간에게는 행복, 슬픔, 불안, 혐오, 분노라는 5가지 기본 감정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기본 감정이란 생존에 필요한 핵심 정서를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화를 내는 것조차 위협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 반응이죠. 문제는 이런 감정을 '언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첫째가 남자아이라서인지 감정 표현에 유독 서툴러 보일 때가 많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괜찮아"라고만 말하거나,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는 식으로 행동으로만 표현하곤 하죠. 정서 발달 전문가들은 이를 정서 지능(EQ)의 문제로 봅니다. 정서 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고,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바로 부모의 감정 표현 방식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아동정책조정위원회).
젓가락질이나 선 긋기를 가르치듯, 마음도 말로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속상해하며 돌아왔다면:
- "속상했구나. 친구가 네 장난감을 가져갔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
- "화가 났구나. 그럴 땐 '내 거야, 돌려줘'라고 말할 수 있어"
- "슬펐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지. 엄마는 여기 있을게"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감정 언어를 반복해서 들려줘야 아이의 감정 어휘가 풍부해집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서 많이 부족했습니다. 아이가 "짜증나"라고만 말할 때 "뭐가 짜증나?"라고 물어봐야 했는데, "그런 말 쓰지 마"라고 감정 자체를 억압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거든요.
부모의 감정 표현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감정 표현에 능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자라며 특히 여성에게는 "참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고, 화가 나도 상대방 기분을 먼저 고려하라고 배웠으니까요. 외국에서 자랐다면 더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감정 표현에 미숙하다고 해서 아이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부족함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나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가르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부모의 역할은 명확합니다:
- 긍정적 감정은 충분히 표현하기 - "사랑해", "자랑스러워", "고마워"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 부정적 감정은 조절하여 표현하기 - 화가 나더라도 "엄마도 지금 화가 나. 잠깐 진정하고 올게"처럼 감정을 인정하되 폭발시키지 않기
- 마음과 생각 구별하기 - "숙제 안 하면 안 돼(생각)"가 아니라 "숙제 안 하니까 엄마가 걱정돼(마음)"로 표현하기
어제 저녁 일을 돌이켜보면, 저는 제 피곤함(마음)을 전혀 표현하지 않고 아이의 행동(생각)만 지적했습니다. "엄마도 오늘 많이 지쳤어. 그래서 참을성이 부족했나 봐. 미안해"라고 먼저 말했다면 아이도 제 마음을 이해했을 겁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어색해서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반복하니 자연스러워지더군요. 감정 표현도 근육처럼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학교 성적이나 재능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표현하며 소통하는 능력이 평생의 행복을 좌우합니다. 제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높은 성적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인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오늘 어땠어? 무슨 기분이 들었어?"라고 물어보세요. 그리고 아이의 대답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저도 오늘 저녁엔 첫째에게 어제 일을 사과하고, 제 마음을 먼저 이야기해볼 생각입니다. 부모도 아이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 그게 바로 감정 교육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