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지?"라는 말을 매일 듣는다면 어떨까요? 저는 제 아이에게서 이런 말은 듣지 않았지만, 다른 형태로 비슷한 신호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물건을 또 잃어버리고 왔을 때, 저는 "잘했어"보다 "왜 또 그랬어?"를 먼저 말하곤 했거든요. 한 엄마는 맞벌이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매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는 안 사랑하지"라고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는 이 문제의 본질이 사랑 부족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인정일 수 있습니다
자존감(self-esteem)은 단순히 한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존감을 크게 두 축으로 설명하는데, 하나는 '받아들여짐(acceptance)'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입니다. 여기서 자기효능감이란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즉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 보일 때 무조건 '사랑'을 주려고 합니다. "1등이 아니어도 사랑해", "넌 소중한 존재야" 같은 메시지 말이죠. 이런 방식이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정작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게 '받아들여짐'이 아니라 '자기효능감'이라면 어떨까요? 실제로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아이는 상담 내내 "저 몇 등이에요?", "제가 제일 잘했죠?"라는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사랑의 확인이 아니라, 자신이 뭔가를 잘할 수 있다는 인정이었던 겁니다.
특히 아들의 경우 성취욕구(achievement motivation)가 강한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성취욕구란 어떤 목표를 달성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우수한 성과를 내려는 심리적 동기를 뜻합니다. 저도 제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이 부분을 실감했습니다. 아이가 자기가 잘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때, 저는 그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그건 그렇고 오늘 알림장은 챙겼어?"라며 잘못부터 지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원했던 건 제 지적이 아니라 "우와, 정말 잘했네!"라는 한마디였을 겁니다.
부모가 보는 문제와 아이가 느끼는 욕구는 다릅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부모는 "괜찮아? 아프지? 다음엔 천천히 뛰어"라고 위로와 조언을 건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는 "엄마, 나 진짜 빨리 뛰었지? 나 제일 빨랐지?"라고 묻습니다. 아이에게 그 순간은 다친 순간이 아니라 '엄마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다 실패한 순간'이었던 거죠. 부모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길 원합니다.
이런 시각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육아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실제로 이걸 놓쳤을 때 아이와의 관계가 어긋나는 걸 경험했습니다. 제 아이가 계속 물건을 잃어버리고 올 때, 저는 "이러다 어른 되어서도 그러면 어쩌려고"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뭔가 잘한 걸 얘기하려 할 때도 "그건 좋은데, 오늘은 또 뭘 잃어버렸어?"부터 물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는 그 순간 제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저는 문제 해결자 역할만 하려 했던 겁니다.
아이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육아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건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어떤 아이는 따뜻한 포옹 한 번이면 충분하지만, 어떤 아이는 "네가 만든 거 정말 멋지다"라는 구체적인 칭찬이 필요합니다. 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선행되어야 올바른 양육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채워주고 나서 가르치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전문가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접근했다고 합니다. "네가 만든 거 정말 잘 만들었다. 넌 이걸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지금 이 정도면 훌륭한데, 여기를 조금만 더 보완하면 더 좋아질 것 같아." 순서가 중요합니다. 부족한 점을 먼저 지적하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먼저 봐주고, 이루고 싶은 것을 함께 이루도록 도운 다음, 그제야 개선할 부분을 제시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칭찬법이 아니라 아이의 자기효능감을 회복시키는 심리치료적 접근입니다. 행동수정(behavior modification)과도 연결되는데, 행동수정이란 긍정적 강화를 통해 바람직한 행동을 늘리고 부정적 행동을 줄이는 방법론을 말합니다. 먼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면, 아이는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그 상태에서 부모의 조언을 훨씬 잘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아침에 아이를 학교 보내기 전 "네가 원하는 건 할 수 있어"라고 세 번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하루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 방법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오늘 알림장 잘 챙겨"라는 당부를 먼저 했다면, 이제는 "오늘 네가 하고 싶은 거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먼저 말해주는 거죠.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건, 잘못된 것을 그냥 지나치면 나쁜 습관이 될까 봐 계속 지적했던 제 방식이 오히려 아이에게 '나는 항상 뭔가 못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자아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아이의 자존감은 '너를 사랑해'라는 말만으로는 회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네가 잘하고 있어'라는 인정이 훨씬 강력한 치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