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애가 동생을 때렸어요." 이 말을 들으면 부모는 무조건 나이 많은 아이부터 혼내야 할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9살 첫째와 4살 둘째가 싸울 때마다 "형이 참아야지"라는 말이 먼저 나왔거든요. 그런데 최근 오은영 박사의 육아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제가 얼마나 큰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형제간 갈등에서 무심코 만들어낸 '희생양'이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얼마나 깎아내렸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있었던 '희생양' 아이
가족치료(Family Therapy)에서는 갈등이 생겼을 때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현상을 '희생양 역할(Scapegoating)'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희생양이란 집안의 진짜 문제는 다루지 않고, 다루기 쉬운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저희 집 상황을 돌이켜보면 딱 이 패턴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과격하게 놀다가 둘째 딸과 부딪치면, 저는 자동으로 "오빠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했어요. 나이도 많고 힘도 세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둘째도 먼저 시비를 걸거나 오빠 물건을 몰래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둘째는 울음으로 상황을 덮어버렸고, 저는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작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지지 않았죠.
더 충격적이었던 건 부부간에도 편이 갈렸다는 겁니다. 남편은 둘째가 여자아이라 감수성이 예민하다며 더 부드럽게 대했고, 첫째는 "아빠는 동생만 좋아해"라고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첫째 편을 들면 이번엔 둘째가 "엄마는 오빠만 좋아해"라고 울었어요. 결국 저희 부부는 각자 한 아이씩 편을 들면서, 정작 갈등의 진짜 원인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출처: 한국가족상담학회)에서는 이런 패턴이 장기화되면 희생양 역할을 맡은 아이가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모두의 평화를 원하면 한 아이가 희생된다
부모는 왜 이런 실수를 반복할까요? 저도 그랬지만, 솔직히 갈등을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싸우면 집안이 시끄럽고, 저도 지치고, 빨리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고 싶거든요. 그래서 말 잘 듣는 아이에게 "네가 참아줘"라고 타이르면 일단 상황이 정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덮어버린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피적 갈등 해결(Conflict Avoidance)'이라고 합니다. 회피적 갈등 해결이란 당장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근본 원인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태도를 뜻하죠. 그 결과 말 잘 듣는 아이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떼쓰는 아이는 울면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걸 학습합니다.
실제로 오은영 박사가 관찰한 한 가족에서는, 엄마가 첫째와 넷째에게만 집중하고 둘째는 항상 혼자 떨어져 있었습니다. 둘째가 "엄마, 저도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말해도 엄마는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둘째는 말을 잘 듣고 혼자서도 잘 놀았으니까요. 결국 가장 순한 아이가 가장 소외되는 역설이 벌어진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패턴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저도 첫째에게 "동생이 어려서 그래, 네가 이해해줘"라고 말할 때마다, 첫째 눈빛이 조금씩 무뎌지는 걸 느꼈거든요. 나중에는 동생이 잘못해도 "어차피 엄마는 내 말 안 들을 거야"라며 아예 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따로 불러 따로 타이르는 '나로호 요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은영 박사가 제시한 해결책이 바로 '나로호 요법'입니다. 나로호(NARO)는 각자를 따로(NA) 불러서(RO) 이야기를 듣는다는 뜻인데, 한국형 갈등 중재 기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누가 잘못했어?"라고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로호 요법의 실전 적용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싸운 아이들을 각각 다른 공간으로 불러 1:1로 대화합니다
-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그래서 네가 화났구나" 같은 공감을 먼저 해줍니다
- 고쳐야 할 행동은 딱 한 가지만 짚어주고, 나머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방법이 효과적인 이유는 아이들이 서로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이 함께 있으면 "동생이 먼저 그랬어요!"라며 방어부터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따로 있으면 "사실 제가 동생 장난감을 안 빌려줬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짚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잘못한 게 여러 개라도, 한꺼번에 다 지적받으면 "나는 나쁜 아이구나"라는 부정적 자아상(Negative Self-Image)을 갖게 됩니다. 부정적 자아상이란 자신을 무능하고 잘못된 존재로 인식하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데, 이게 고착되면 자존감 형성에 치명적입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저도 이 방법을 써보니 확실히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둘을 앞에 세워놓고 "오빠가 동생 때렸지? 동생은 오빠 물건 가져갔지?"라고 따지면서 둘 다 혼냈거든요. 그러면 둘 다 울고, 저도 지치고,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따로 불러서 각자 이야기를 들어주니, 아이들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더라고요. 그리고 한 가지만 고치자고 하니까 "그건 제가 할 수 있어요"라며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형제자매 갈등은 매일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아이의 자존감이 달라집니다. 저는 이제 "누가 먼저 잘못했어?"보다 "각자 어떤 마음이었어?"를 먼저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집안을 위해 한 아이에게 참으라고 강요하지 않으려고요.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아이들 각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는 부모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나로호 요법 한 번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